여행 이야기

인도네팔 불교 8대 성지순례

김영경1975 2026. 1. 25. 00:28

인도네팔 불교 8대 성지 순례

(2026/01/13(화) ~ 2026/01/23(금))

 

18기 선정행 김영경

 

 

여행 가기에 앞서

드디어 내일이면 인도네팔 불교 8대 성지 순례를 가게된다.

불자라면 한번은 꿈꿔 봄직한 인도와 네팔여행.

부처님께서 태어나셔서 성도하시고 전법하시고 열반하신 그곳.

 

하지만 정작 부처님이 계셨던 인도는 지금은 불교 신자가 별로 없다. 그리고 뿌리 깊은 계급제도인 카스트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힌두교의 나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인도로 많이들 가고 열악한 생활환경에 실망한다고 한다. 하지만 인도는 여전히 많은 문화 유산을 가진 높은 문명을 가졌던 나라가 아닌가! 최근에는 수학과 과학기술에도 두드러진 발전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인도와 부처님이 태어나셨던 오늘의 네팔까지 간다.

 

*여기서 불교 8대 성지란?

부처님 탄생의 땅 룸비니(Lumbini)

깨달음의 땅 보디가야(Bodh Gaya)

첫 설법의 땅 샤르나트(Sarnath)

열반에 오르신 땅 쿠시나가라(Kushinagar)

 

기적을 행한 곳 쉬라바스티(Shravasti)

최초의 비구니승단 창설지 바이살리(Vaishali)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한 곳 라즈기르(Rajgir)

도리천에서 내려온 곳, 꿈의 계단 상카시아(Sankassa)

 

첫째날(1월 13일) 드디어 인도로

3시에 기상. 새벽 4:40 출발하는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여행가시는 분들이 많았다. 아버지께서 집에서부터 동대구 복합환승 터미널까지 동행해 주셨다. 감사하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 인도로.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M카운터에서 8:40 집결이다. 나는 9:00 도착이므로 조금 늦을 예정이다. M7에서 수화물을 붙이고 여행사 대표이신 아툴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부처님의 나라에 가는 만큼 부처님 같은 마음으로 힘든 여행을 견디시라는^^

Air India 비행기는 한시간 연착되어 12:05에서 13:05으로 늦춰졌다.

 

AI313 ICN to DEL 13:05 ~ 18:30

 

나마스테!!! 인사를 하며 탑승했다. 이번 인도네팔 불교 8대 성지순례는 국제포교사 분들과 동행했다. 스님한분(형조스님)과 나와 같이 대구에서 오신 분, 부산 범어사에서 오신 분.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이번 여행의 기대감에 설레었다. 감기에 걸겼고 새벽 일찍 올라온 다고 몸은 피곤했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에 여행한다는 것은 새로운 활력이 된다.

 

부처님의 나라, 깨달은 성자들의 땅, 이제 그곳에 나도 들어가게 된다. 쥬스와 스낵을 먹고 기다리니 Vegetarian을 위한 식사가 나온다. 그냥 심심한 맛,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한국 영화 소방관을 졸면서 보았다. 그리고 히트맨2를 너무 재미나게 보고 Vegetarian 샌드위치도 먹고 잠시 내가 부처님의 나라에 간다는 것을 잊게 했다.

 

이번 여행은 내게는 특별하다. 내 인생이 중년으로 들어가는 길목이고 인생행로가 바뀔수 있는 시점에서 떠나는 여행이다. 여러 가지 변화의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 나의 노년을 대비해야 한다는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떠나는 성지 순례이다. 부처님의 나라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고

 

영어로 불교를 외국사람에게 포교하는 국제포교사 선생님들과 같이 성지순례를 떠나오니 인도분들과 영어로 대화하시는 소리도 들리고 승무원과의 대화도 자연스럽다. 이제 긴 비행을 마치고 델리에 도착하는가 보다. 공항에 마중나오신 가이드 마헨드라님이 메리골드로 만든 화환을 한사람씩 걸어 주셨다. 그동안 편안하게 산 것을 감사하고 인도는 다르기 때문에 오신 것이기 때문에 불편도 감사하시는 마음으로 생각하실길 바란다고~

 

마헨드라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내일 5:30 기상, 7:10 출발입니다. 인도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과거의 부처님 시대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현재에 발전된 시대에 사는 사람들도 있고 미래가 기대되는 곳입니다. 숙소인 The Grand 호텔로 가는 동안 마헨드라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는 264호를 배정 받고 호텔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국적인 음식이 강렬하기도 했지만 후식으로 사과까지 다 먹고 호텔방에 올라가 여독을 풀었다. 그리고 100$8,500루피로 바꿔주셨다. 네팔비자 30$ + 공동경비 80$ + 가사공양 30$ 납부완료.

 

둘째날(1월 14일) 사르나트

한국시간 5:30, 인도시간 2:00에 시차 때문에 깼다. 그리고 잠을 자다 깨다 했다. 5:30에 모닝콜이 울렸다. 6:30에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7:20에 늦게 내려왔다. 델리 공항으로 가서 바라나시 행 국내선을 탄다. 아침 예불을 델리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드렸다.

 

AI1741 DEL to VNS 10:40 ~ 12:00

 

9:40 탑승이라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국내선 공항 구경을 했다. 보석이며 바디 용품점, 예쁜 소품을 파는 곳 등을 둘러보고 구경하며 느낀점은 공항이니 만큼 고급스러운 것이 많다는 것이었다. 한 보살님이 미키 마우스 인형 큰 것을 사오셨는데 2,000루피 주셨다고 한다.

 

바라나시는 부처님이 최초로 5비구에게 설법하신 사르나트가 근처에 있는데 그곳에 녹야원이 있다. 다섯비구를 처음 만난 곳에 세워진 차우칸디 스투파(영불탑)와 녹야원 안의 첫 설법한 장소인 다메크 스투파를 둘러볼 예정이다.

 

The Fern Residency 호텔에서 처음으로 한식을 먹었다. 녹야원 근처의 호텔이다. 그리고 영불탑으로 향했다. 차우간티 스투파 우리말로 영불탑은 거대하고 잘 가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녹야원으로 향했다. 녹야원의 다메크 스튜파 앞에서 금강경을 독송했다. 형조스님의 목탁소리에 일동은 독송을 하고 다른 나라에서 오신 분들도 각자의 나라의 예법대로 경전을 왜우신다.

녹야원의 다메크 스튜파

금강경 독송후 다메크 스튜파를 한번 돌고 녹야원을 따라 나오면서 아소카 석주를 보고 그리고 옆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에 들러 네 마리 사자상을 구경했다. 인도의 국가 문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인도의 모든 지폐에서 볼수 있다고 한다. 초전 법륜상도 전시되어 있는데 이 불상은 인도 불상 예술의 백미라고 일컬어 진다고 한다. 그리고 또 부처님 8대 성지와 4대 성지를 나타내는 패널이 전시되어 있었다.

 

고고학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일행은 4명씩 짠 조와 함께 뚝뚝(오토릭샤)이라는 삼륜차를 타고 갠지즈강(황하)이로 이동했다. 가는 길은 매연에, 사람에, 차로 붐비었고 삐리삐리 삐리빔이라는 경적소리가 귀를 울렸다. 차도 사람도 동물들도 함께 가는데 묘하게 사고나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옆에 계신 선생님 한분이 이를 두고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내려서 갠지즈 강으로 향했다. 강변의 합장한 큰손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 소녀가 머리에 자를 찍어 주었다. 고마워 100루피를 주었다. 다른 아이들도 다가와서 같은 일행이 선물한 사탕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작은 보트에 올라 탔다. 24명이 옹기종기 모여서 구명조끼를 입고 갠지즈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가트를 구경하기 위해서.

 

갠지즈강은 인도인에게 신성한 강이며 인도사람들은 갠지즈 강변에서 화장해서 갠지즈강에 띄워지는 것을 소원으로 여긴다고 한다. 다리 너머로 태양이 지고 있고 강변의 가트는 사람들로 붐비고 특이한 건물들이 많았다. 한쪽에서는 힌두교 의식이 거행되고 그옆에서는 신랑 신부가 결혼 사진을 찍고 있다.

갠지즈의 가트

 

인도의 신 중의 몇몇 신이 그려진 가트도 나오고(힌두교에서는 부처님도 그들 신들 중 한분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더 올라가니 연기가 피어나는 가트가 나왔다. 화장장인 것이다. 여기저기서 화장을 하고 있었고 주위강가에는 꽃잎과 재과 떠 다니고 있었다. 우리도 가이드가 준 꽃을 갠지즈강에 띄우며 삶과 죽음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그들의 생각을 조금이 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무도 우는 사람이 없고 나도 그들이 좋은 곳에 나시라고 빌어 주었다.

 

강변의 가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고 야경도 근사했다. 스님의 권유로 반대편 강변의 모래언덕으로 몇분이 올라가셨다. 그 유명한 황하사(황하의 모래)가 아닌가? 금강경에 나오는 황하사가 바로 이것인 것이다. 나도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보았다. 감회가 새롭다. 갠지즈강에서 나와서 숙소인 Radisson 호텔로 와서 식사를 하고 배정받은 406호로 올라왔다.

내일은 3:30 기상, 4:30 조식, 5:30 출발이다.

 

셋째날(1월 15일) 보드가야

어제와 같이 2시쯤 깨서 오늘 갈 마하보디 대 탑에 대해 공부를 좀 했다. 어제 아침에 지각을 해서 오늘은 일찍 서둘렀는데 또 지각이다. 보드가야 까지 230km, 6시간을 가야한다.

 

*생주멸의 신(:브라만, :비시뉴, :시바) 갠지즈강 원래 이름은 강가(시바신의 부인)

 

보드가야! 부처님이 깨달으신 땅!

중간에 주유소에서 화장실에 다녀오고 노상방뇨까지 하고 보드가야의 호텔 Anand International에 도착했다. 준비물로 개인별 2kg의 쌀을 가져갔었는데 우리쌀로 지어진 한국밥이 맛있다. 한국요리를 하실 수 있는 요리사님이 미리오셔서 한국음식을 해 주신 것이다.

 

12:15쯤 수잣타 마을로 향했다. 수자타 스튜파를 참배하고 한바퀴 돌아나오며 스님의 집전으로 예불 드리고 반야심경을 합송했다. 수자타라는 소녀가 수행자이신 부처님께 공양한 것은 부처님이 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한 것이 아니라 남루하고 쓰러져 가는 수행자에게 한 것이므로 그 공덕이 크다고 한다.

 

그리로 마하보디 사원으로 향했다. 미리 핸드폰을 가져 가면 않된다는 것을 알고 한국에서 올 때 자그마한 카메라를 가져갔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들어가니 마하보디 대탑이 눈에 들어왔다. 미리 준비한 덧신을 신고 마하보디 사원으로 입장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사람들과 스님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곳, 이곳을 후대 사람들이 기념하려고 이 정교한 대탑을 만든 것이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기도 하고 찍어 주기도 하고 부처님 앞에서 예불, 반야심경을 독송했다. 많은 현지인과 외국인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했고 일부 현지인은 늙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참배하는 모습이 우리들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환경이 열악하고 생활수준이 매우 낮은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반면에 높은 사람도 있고고대의 인도는 4대 문명의 발생지 중 하나로 높은 문명을 자랑하는 곳이었을 텐데, 지금의 인도와 앞으로의 인도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인도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공부하는 아이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본다. 하지만 너무 복잡하다.

 

마하보디 대탑 순례를 마치고 한국사찰인 분황사를 향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제법 널찍한 터에 한국 절이 있었다. 주지스님의 법문을 듣고 호텔로 돌아와 석식을 먹었다. 저녁에는 네팔에서 높으신 스님이 호텔로 오셔서 목걸이며 불교기를 주셨다. 사진을 찍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내일을 기약하며210호에 머물렀고 내일도 3:30 기상, 4:30 조식, 5:30 출발이다.

 

넷째날(1월 16일) 왕사성

시차 때문인지 2시만 되면 깨진다. 한국 시간으로 5:30.

현지시간 5:30 출발이다. 7시쯤 부처님 불상 옆 건물 들판에 볼일을 보라고 해서 죄송하게도 볼일을 봤다. 여자분들끼리 모여서 단체로 모두 들겁게 해결했다. 남자는 차 근처에서^^

 

그리고 영축산을 올랐다. 독수리 바위를 사진찍고 여래향실(부처님이 머무셨던 곳) 주변에 모여 앉아 스님 집전으로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빔비사라왕의 감옥터로 갔다. 부자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지는 빔비사라왕의 감옥터에서 영축산이 보였다. 그리고 죽림정사로 향했다.

 

죽림정사는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께 기증한 최초의 사찰이다. 대나무가 무성한 죽림정사는 공원으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수행하던 곳, 우리는 부처님 불상이 있는 건물앞에서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한바뀌 돌아 나오면서 말로만 듣던 죽림정사를 죽림정사가 있던 곳을 느낄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 사람이 지었다는 호텔인 Indo Hokke호텔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배가 고팠고 해서 그런지 제법 인도 음식이 익숙하다. 한국쌀로 지은 밥과 한국음식도 한켠에 있고 오늘은 칼국수도 나왔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란다 대학으로 향했다.

 

나란다 대학은 오늘날의 대학 캠퍼스 만큼이나 평화롭고 컸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을 아직도 발굴 중이라고 한다. 79세 되신 나란다 대학 설명 가이드 할아버지가 유창한 한국어(?)로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 발굴된 시기는 5C, 7C, 9C인데 지진으로 땅에 파묻힌 것을 발굴하고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 가로 10km, 세로 5km이다라고 하신다. 분명 한국어를 잘 모르실 텐데 설명하시는 것이 귀에 쏙쏙들어 온다.

나란다 대학

그 규모에 한번 놀라고 그때 스님들이 공부하셨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중국과 한국의 스님들도 이곳에 공부하러 오신 만큼 많은 나라에서 스님들이 이곳으로 유학오셨다고 한다. 유적지 순례를 마치로 파트나까지 2시간 30분을 와서 숙소인 호텔 Patliputra Continental4시 정도에 도착했다.

 

일찍 씻고 6시 저녁식사를 했다. 그리고 호텔 4, 복도의 넓찍한 쇼파에 앉아 여자분들끼리 담소를 나누었다. 911일 일정에 3일마다 호텔방 룸메이트가 바뀌는데 새로운 룸메이트는 세계43개국을 여행하신 선생님(전직)이시다. 여행은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풍습을 만날 수 있게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파트나 시내 한 중간에 있는 호텔은 사람과 뚝뚝이가 붐빈다. 경적소리도 많이 나고 복잡하고 사람도 많다. 생필품을 사기 위해 가이드를 따라 상점에 갔었는데 아~ 혼자선 못 나오겠다. 따라와 준 선생님이 감사하고 고맙다. 내일은 3:00 기상, 4:00 조식, 5:00 출발이란다.

내일을 기약하며 오늘은 이만

 

다섯째날(1월 17일) 바이샬리와 쿠시나가르

5시 출발. 바이샬리를 향해

부처님 사리가 있는 곳에 갔다. 부처님 최초 8사리탑 중의 하나라고 한다.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 앞에서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대림정사로 향했다. 대림정사는 기녀 암라팔 리가 부처님에게 기증한 사찰로 아쇼카 석주가 원형 그대로 보존 되고 있고 아난존자의 사리탑이 있고 원숭이 연못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케세리아로 향했다. 케세리아 대탑은 부처님의 발우를 모신 탑으로 인도에서 현존하는 대탑 중 가장 큰 규모를 보인다고 한다. 대탑을 한바퀴 돌아 나왔다. 부처님께서 두 스승님 알라라깔라마, 웃다카라마뿟타 밑에서 수행하신 곳이 근처라고 한다. 그리고 쿠시나가르까지 이동했다. 2시가 가까웠다. 가이드님이 점심식사가 늦어진다며 과일과 달걀을 준비해 차안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The Royal Residency 호텔에 도착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열반당으로 향했다. 부처님께서는 두 그루의 살라나무 사이에서 머리는 북쪽, 얼굴은 서쪽을 바라보고 누워서 열반에 드셨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거대한 부처님이 누워계시고 우리는 가사를 입혀 드리고 부처님 뒤편에서 한글 금강경을 독송했다. 그리고 헌화를 하고 와불을 한바퀴 돈 후 열반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부처님 다비장인 라마 스투파에 갔다. 반야심경을 합송하고 부처님 사리를 나눈 장소에 갔다.

열반당

부처님의 사리는 8개의 나라에서 나누어 가져갔다고 한다. 대반열반경에 따르면 마가다, 바이샬리, 카필라바스투, 알라카파, 라마가마, 벤타디파, 파바, 쿠시나가르라고 한다. 부처님은 열반 유훈을 남기시고 그렇게 떠나셨다.

 

All conditioned things are impermanent.

Strive on with diligence[for your own liberation].

 

모든 조건 지워진 것은 무상하다.

자신의 해탈을 위해 부지런히 정진하라.

 

여행도 중반에 들어서니 음식도 친숙해 지고 막연한 동경과 현실 환경의 열악함에서 오는 실망들이 이해와 포기로 이어지고 있다. 수도자가 많은 곳, 성자들의 땅, 그러나 불결한 생활환경, 돈을 구걸하고 잡상인이 많은 곳. 그러므로 여기에서 많은 성자와 부처님이 나셨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이

 

우리는 방문객인 까닭에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모여든다. 하지만 성실한 일반 시민들, 땅콩파는 소년들(부산서 오신 분은 첫날 소년들에게 땅콩을 사셨다), 호텔의 열악한 시설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친절하게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신 분들은 인도를 인도답게 만드는 분들이 아닐까 한다.

 

여섯째 날(1월 18일) 룸비니

내일은 3:30 기상, 4:30 조식, 5:30 출발이다. 2시에 깨었다. 가까운 친지분께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고 정리하고 5시 네팔의 룸비니로 향했다. 3시간 정도 가야하고 룸비니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네팔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안개가 심하다.

 

가이드님의 소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인도는 소를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인 힌두교 신자가 소를 먹지 않고, 신께 바쳐진 숫소는 주인이 없고 자유롭로 나머지 숫소와 대부분의 암소들은 농시 짓거나 우유를 위해 키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소가 늙으면 풀어서 놓아 주는데 그런 소는 말라서 거리를 다니고 그런 소가 죽으면 고기는 짐승이 먹고 가죽과 뼈는 가공업자들이 가져간다고 한다.

 

드디어 인도네팔 국경이다. 인도에서 출국 심사를 받고 네팔에서 입국심사를 받았다.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11시쯤 호텔 Siddhartha Vilasa로 향했다. 네팔을 동쪽에 있으므로 인도보다 15분 빠르다. 네팔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열쇠를 받아들고 515호로 향했다. 방이 근사하다. 델리나 바라나시 호텔만큼. 그리고 룸비니 마하데비 사원으로 향했다.

 

흰 사각형 건물이 마하데비 사원이 우리를 맞았다. 마야 부인께서 산기를 느끼고 나뭇가지를 잡고 부처님을 낳으신 곳에 후대에서 사원을 세운 것이다. 아쇼카 석주에 이곳이 부처님이 태어니신 곳이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아쇼카왕이 세운 이 석주는 마하데비 사원 옆에 세워져 있다. 일동 사원에서 예불을 드리고 사원이 잘 보이는 보리수 나무 아래서 금강경을 독송했다. 그리고 불교기를 들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조금더 걸어가니 아기 부처님 상이 나왔다. 그리고 걸어서 평화의 불로 향했다. 그 앞에서 사진 찍고 긴 수로를 따라 걸었다. 인공으로 만든 이 수로는 크고 길게 이어져 있고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배도 다니고 있었다. 수로 끝에 각곡의 사원이 있는데 오른쪽은 남방불교 사원이, 왼쪽은 한국, 중국, 네팔 사원이 있었다.

 

우리는 한국 사원인 대성 석가사에 들어 갔다. 나무로 지어진 우리네 사찰이 아니라 콩크리트로 거대하게 지어진 건물이 보였다. 사찰 모습에 낫설어 하는데 주위의 사원들을 보니 아~ 현지에 맞게 발전한 것이 구나. 주위 다른 나라 사원도 마치 성을 보는 것 같이 웅장했다. 그런데 주불이 대웅전 안에 아직 조성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네팔 사원에 들렀다.  보드가야의 호텔 Anand International에서 뵈었던 켄뽀 상게 랑중 린포체께서는 않계셨지만 스님들께서 차를 대접해 주셨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저녁식사가 이어졌는데 일행 중 한분이 포도주를 사주셔서 맛있는 식사에다 분위기까지 멋졌다. 브라보!!! 피곤해서 푹 잤다. 3:30 기상, 4:30 조식, 5:30 출발이다. 그래도 2시에 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순례도 중반에 들어 이제는 순례할 날 보다 순례한 날이 더 많다. 아쉬움 반, 안도감 반이다.

 

일곱째날(1월 19일) 사위성

8시쯤 인도네팔 국경에서 네팔을 출국, 인도에 입국했다. 기원정사가 있는 쉬라바스티(사위성)까지 4시간 더 가야 한다. 인도 쉬라바스티에 도착, Tulip Inn에 여정을 풀었다. 식사를 하고 317호 호텔방으로 올라가서 1시간 쯤 쉬다가 2시에 집결하기로 했다.

 

기원정사는 부처님께서 24안거를 나신 가장 오래 머무셨던 곳이다. 우선 천불화현터를 향했다. 그리고 앙굴리 말라 집터와 수닷타 장자 집터를 돌아보았다. 기원정사는 제타바나라고 하며 수닷타 장자가 황금을 깔아 땅을 사서 부처님께 봉헌한 곳이다. 많은 사리탑과 사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금강경을 독송했다. 참 평화로운 곳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곳에 오래 머무셨구나!

 

그리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호텔 로비 앞의 불상을 찍는데 스카프 가게에서 구경하라 신다. 작은 가방과 머플러 하나를 샀다. 피곤한 하루가 그렇게 흘러 갔다. 내일은 4:00 기상, 5:00 조식, 6:00 출발이란다. 조금 여유롭다. 방안에서 사진을 정리하고 band에도 올렸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이다. 일행 중 한분이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서둘러 한국으로 가셨다. 고인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여덜째날(1월 20일) 상카시아

6시 출발이다. 쉬라바스티에서 상카시아까지 가야한다. 인도는 거의 200년 가까이 영국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1858~ 1947년 약90년간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1947814일 이슬람교인 동파키스탄과 서파키스탄으로 나눠 졌다고 한다. 다양한 기후, 다양한 민족의 복잡한 나라이다. 언어도 1829주가 있다고 한다. 화폐에는 다양한 언어로 100루피, 500루피, 1000루피라로 쓰여 있다고 한다.

 

중간에 대도시인 럭나우를 거쳐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6시간 지난 1시쯤 호텔 The Royal Residency에 도착 식사를 했다. 여행 내내 한식 요리를 담당한 요리사님 덕분에 그래도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었다. 201호 방을 배정받고 호텔방에서 휴식 3시 출발이다.

 

부처님께서 천상에서 어머니 마야 왕비에게 설법한 후 인간계로 돌아오셨다는 장소인 탑에 가서 사진 찍었다. 도리천에서 내려오신 곳으로 꿈의 계단이라고 한다. 코끼리 모양의 아쇼카석주 꼭대가가 이것을 증명해 준다고 한다.

 

상카시아는 시골이라 호텔 시설이 열악했지만 일동 식사 후 화기애하게 담소를 나누며 맥주를 즐기셨다. 오늘로 순례 일정은 끝나고 내일은 아그라로 가서 타지마할과 아그라 성을 관람할 예정이다. 그리고 델리로 가서 델리 국립방물관에 있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참배한 후 귀국한다. 내일은 4:30 기상, 5:30 조식, 6:30 출발이다.

 

아홉째 날(1월 21일) 타지마할

6시 반에 출발, 오늘도 안개가 심하다. 9:40에 아그라에 도착했다. 쇼핑할 수 있는 곳에 내려 주셔서 많이들 목덜이며 코끼리상이며 사셨다. 그리고 호텔 Marriott 체인의 Courtyard 호텔로 가서 12쯤 점심 식사를 했다. 유명한 호텔 체인으로 시설이 훌륭했다. 점심 후 1시쯤 타지마할로 향했다.

 

타지마할로 가려면 우선 전기차를 타고 가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동쪽문을 통해 들어가니 흰 건물이 보였다. 그 유명한 타지마할이다. 네 기둥에 중간 주 돔건물은 이슬람사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무굴제국 5대 황제 샤 자한이 그의 아내를 위해 지은 무덤이다. 잠시 그 위용에 놀라고 아름다음에 감탄했다. 단체 사진을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찍고 315분까지 1시간 주셨다. 수로를 따라 왼쪽으로 돌아들어 가서 샤 자한의 묘와 그의 아내의 묘를 참배했다. 건물 안에서 소리를 내면 울림이 되어 되돌아 왔다.

타지마할

오른쪽으로 돌아나와 다시 처음 모인 자리로 되돌아 와서 아그라 성을 향해 갔다. 아그라 성은 Red Fort라고 하며 무굴제국 3대 황제 악바르에 의해 지어졌다. 높이 20m, 2.5km의 거대한 성으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 졌다. 규모와 정교함, 화려함에 감탄하고 보니 멀리 타지마할이 보였다. 일행은 다양한 포즈로 사진 찍고 즐거워 했다.

 

그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한분이 아프셔서 아그라성에 못 가고 호텔로 가셨다. 음식이 바뀌니 변비이신 분, 설사하시는 분, 아프신 분이 생기는 것 같다. 방을 나눠쓴 세분의 포교사 선생님과도 많이 친해졌다. 이번 순례를 힘들지만 즐겁게 마칠 수 있게 해 주신 것 같다. 이제 델리 국립박물관만 관람하면 된다. 내일은 6:00 기상, 7:00 조식, 8:00 출발이다.

 

열번째 날(1월 22일) 뉴델리

아그라에서 델리까지 400km, 4시간이 걸린다. 고속도로라서 화장실도 좋고 승차감도 좋다.

새로운 가이드님의 인도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인도는 아리아인 60%, 드라비다인 30%, 몽공인 10%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며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불교등의 종교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계급제도인 카스트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슈드라로 구성되며 슈드라 여자 대통령이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낫선 시크교도에 대해 설명 해 주셨다. 시크교도는 1. 머리를 안 자르고 2. 머리 빗을 가지고 다니며 3. 팬을 가지고 다니며 4. 팔지를 차고 5. 칼을 가지고 자연에서 생활을 한다고 한다. 무사층에 시크교도가 많고 머리카락을 안짜르고 터빈을 쓴다고 한다.

 

그리고 인도의 젊은이 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IT 계통 일자리이며 아마도 인도는 수학이 발달한 나라이여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학교에서 50단 까지 공부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이 공무원, 선생님 같은 직업을 선호한단다.

 

재미있는 인도 이야기를 들으며 국립박물관으로 향해갔는데, 126일이 인도의 날이라 행사 준비한다고 일대가 분주하고 국립박물관도 오후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는 한식 식당에서 김치찌개와 제육복음을 맛나게 먹고 차와 비누등을 쇼핑하고 가니 2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가이드님이 가까운 유적지인 아그라 센키 바울릿이라는 우물로 데려가셨다. 사각형 계단식 우물로 거대했다. 우리네 마을에 있는 우물과는 규모부터 달랐다.

 

그리고 간디 박물관에 갔다. 비폭력 평화를 외친 그의 생애를 볼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분이 걸으셨다는 길을 따라가 보았다. 중간에 일행을 놓쳐 살짝 당황했지만 박물관의 상점에 들러 기념품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Ambience Mall로 데려다 주셨는데 또 일행을 놓쳐벼렸다. 한분께서 물어물어 일행을 찾아갔는데 다들 쇼핑센터 지하의 생필품 코너에서 비누, 치약, , 과자등 정말 한아름 사시고들 계셨다. 6시 반쯤 한아름씩 들고 쇼핑센타 앞에 모여 중국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델리는 여느 대도시와 같이 차도 많고 도로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렇게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한 선생님께서 델리발 인천행 비행기를 Check in 해 주셨다. 감사하다. 그리고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다시 한국으로 간다.

 

AI 312 DEL to ICH 01:30 ~ 11:49

 

한국에는 오전 11:49 쯤에 도착 예정이다. 이렇게 인도 순례도 끝이 나고 있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고 6시간 49분을 날아서 인천 공항에 도착, 인도 한국 시차는 3시간 반이다. 이제 대구로 내려가면 된다. 1:20분 차를 끈었다. 대구로 같이 내려가는 분이 있어서 동행한다. 이제 집으로 집으로!!!